출처 : 매일경제 (2025.12.30.)

전기차 캐즘發 계약해지 쇼크
트럼프, 美전기차 세혜택 중단
포드 등 배터리계약 잇단 취소
LG엔솔, 4조원에 美공장 매각
업황 부진에 유동성 확보 나서
AI시대 ESS수요 노린 韓기업
벤츠 등 고급차 배터리 공략도
저가공세 中, 점유율 격차 벌려
◆ K배터리 활로 ◆
국내 배터리 업계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직격탄에 혹한기를 맞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양극재 소재 업체 엘앤에프는 각각 미국 포드와 테슬라의 판매 타격으로 최근 2주 새 17조3000억원에 달하는 계약 물량이 끊겼다. 이에 앞서 포드는 지난 15일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전격 중단하고 차세대 전기 픽업트럭(T3)과 전기 상용 밴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등도 잇달아 전기차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어 시장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테슬라의 사이버트럭 배터리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엘앤에프 등 소재 업체의 충격도 커졌다. 테슬라는 미국 텍사스주 기가팩토리에서 연 최대 25만대의 사이버트럭을 생산할 수 있지만 실제 판매는 연간 2만대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시장조사 업체 EV세일즈와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미국 전기차 판매 대수는 159만8000대로 전년 대비 1.8% 늘어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중국(1412만5000대·26.6%), 유럽(374만7000대·27.2%) 등 주요국에 비해 크게 저조한 수준이다.
친환경 정책을 뒤집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월 전기차 세액공제 지원을 끝낸 영향이 직접적이다. 실제 연말로 갈수록 판매 감소세는 더 가팔라졌다.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8~9월만 해도 월 14만대 수준을 유지했지만 세제 혜택이 끝난 10월엔 6만9000대, 11월에는 6만5000대로 추락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을 주력 납품처로 두고 있는 데다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완성차 업체와 적극적으로 합작해온 만큼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 배터리 업체 고위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전까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사업을 통해 어떻게든 먹거리를 확보하며 버티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주 불확실성이 커지자 공장 등 자산 매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례도 등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4일 혼다와 합작한 4조2000억원 규모 오하이오 공장 건물을 혼다 미국법인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사업구조를 대폭 손보는 경우 역시 잦아졌다. SK온은 지난 11일 업황 부진으로 포드와 결별을 선언했다. 포드와 손잡고 만든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운영구조 수술에 나섰다. 이전까지 SK온과 포드는 50% 지분으로 블루오벌SK에 투자하며 테네시주와 켄터키주 공장을 공동 운영했지만 앞으로 테네시 공장은 SK온이, 켄터키 공장은 포드가 각각 보유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SK온이 운영 효율성은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합작법인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던 배터리 수요처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가격경쟁력 등을 앞세운 중국이 빠르게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SK온과 결별하면서도 세계 1위 배터리 업체 중국 CATL 기술을 빌려 설비를 확장 중인 포드가 대표적이다. 포드는 CATL로부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 라이선스를 받아 미시간주에 공장을 짓는 작업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들어간다. SK온과 갈라선 포드 켄터키 공장도 CATL 기술을 활용해 ESS 생산시설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다른 제품도 상황이 비슷하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27.2%였던 CATL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중국 시장 제외)은 올해 29.2%로 더 높아졌다. 중국 BYD 점유율 역시 4.1%에서 7.6%로 크게 올랐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24.2%→21%), SK온(10.7%→9.9%), 삼성SDI(9%→6.6%) 등 한국 3사는 일제히 하락하며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배터리보다 성장성이 좋은 ESS 영토를 개척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 미시간주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하며 가장 먼저 시장을 열었다. 국내에선 2027년부터 충북 오창에서 1GWh 규모로 생산을 시작한다. SK온은 충남 서산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양산 검증을 끝냈고 조지아주 공장 일부 생산라인을 LFP 배터리로 바꿔 내년 양산에 들어간다. 삼성SDI도 인디애나주 스텔란티스 합작공장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속속 바꾸고 있다.
SK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올해 1075GWh에서 2030년 2026GWh로 89% 늘어나는 반면, ESS 배터리는 이 기간 288GWh에서 745GWh로 159% 늘어 더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확대되면서 ESS 수요가 빠르게 늘 것"이라며 "ESS 사업을 통해 캐즘 타격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또한 화재 위험이 적은 첨단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속도를 내면서 고급차 등 중국이 따라오기 어려운 고품질 시장을 통해 캐즘 '보릿고개'를 넘는다는 계획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계약 물량이 취소되는 가운데 이달 메르세데스-벤츠와 2조600억원 규모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대체 먹거리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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