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매일경제 (2024.09.03)
자동차 명가 독일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독일 국민차로 알려진 폭스바겐이 1937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국 내 공장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도요타에 이어 세계 2위 자동차 메이커다. 많게는 2만명까지 감원할 수 있는 공장 폐쇄 소식에 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2일(현지시간) 노사협의회에서 "자동차 산업이 몹시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계획을 밝혔다고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가 이날 보도했다. 경영진은 최소한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을 1곳씩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독일 볼프스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 잘츠기터 등 6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폭스바겐 산하 브랜드 아우디는 지난 7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8 e트론 생산을 중단하고, 이 모델을 만드는 벨기에 브뤼셀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독일 내 공장 폐쇄는 처음이다. 경영진은 아울러 1994년부터 유지해온 고용안정 협약도 종료할 뜻을 밝혔다. 슈피겔은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 약 2만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폭스바겐의 상반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독일 내 폭스바겐 직원은 약 29만명이다.
폭스바겐은 전기차 수요 부진과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경영진은 2026년까지 100억유로로 책정한 비용 절감 목표를 40억∼50억유로 더 높일 계획이다. 블루메 CEO는 "경제 환경은 더욱 어려워졌고, 새로운 경쟁자들이 유럽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며 "제조 지역으로서 독일은 경쟁력 면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즉각 항의했다. 다니엘라 카발로 노사협의회 의장은 "수익성과 고용 안정성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합의에 경영진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우리 일자리와 노동 현장, 단체협약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산업 노조(IG메탈)는 "폭스바겐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책임한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폭스바겐의 이번 발표는 정치권도 흔들고 있다. 지난 주말 지방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득세한 가운데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의 연정에 불안을 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숄츠 총리의 소속 정당인 사회민주당(SPD)의 베른트 베스트팔 의원은 블룸버그에 "폭스바겐 경영진이 공장 폐쇄와 해고를 검토하는 것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사민당은 직원 편에 굳건히 서 있으며, 노조와의 건설적인 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경제부는 성명에서 감원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폭스바겐 경영진이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을 포함한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BYD 등 중국 현지 전기차 기업이 중국 시장과 유럽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폭스바겐의 실적에 타격을 입혔다. 올해 상반기 폭스바겐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 줄어들었다. 폭스바겐은 2026년까지 비용을 줄여 마진율을 6.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올해 상반기 마진율은 2.3%에 불과하다.
블룸버그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자국의 공장을 폐쇄하는 등 뼈아픈 구조조정 없이는 생존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독일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중단했고 독일의 지난 7월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7%나 급감했다.
과거 폭스바겐의 신뢰와 명성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오늘날 위기의 시발점이 된 '디젤 게이트'로 불린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알려진 지 9년 만에 처음 형사재판도 열려 눈길을 끌었다. 독일 ZDF방송은 3일 마르틴 빈터코른 전 폭스바겐 CEO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첫 공판에 출석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검찰은 2019년 빈터코른 전 CEO를 사기와 시장조작 혐의, 2021년에는 청문회 위증 혐의로 기소했지만 건강 문제로 재판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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