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스티브 잡스의 죽음
파멸이 예견되는 애플
세상 사람들은 그를 스티브에 비유하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그는 스스로 스티브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참으로 영리한 친구지요. 누구도 스티브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내가 될 수 있는 최상의 팀 쿡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2장 : 시골 남부 소년의 세계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건
그날 쿡이 목격한 KKK 단원들은 그 지역에 살던 한 흑인 가족의 사유지에서 십자가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쿡은 아무 생각 없이 소리쳤다. “그만두세요!” 거기에 모인 KKK 단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명이 후드를 벗더니 자신을 로버츠데일에 있는 가톨릭교회의 부제라고 소개했다. 그는 쿡에게 얼른 가던 길이나 가라고 경고했다. 어린 쿡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쿡이 성장기에 목격한 인종차별과 증오는 평생 그와 함께하며 삶과 사업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최초로 환경청장을 지낸 리사 잭슨Lisa Jackson은 쿡의 제안으로 2013년 애플의 환경보호 프로젝트를 지휘한 바 있다. 그는 쿡의 인생관이 남부라는 성장 배경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라는 존재의 일부거든요. 그 시절에 남부에서 자란 사람은 누구든 추한 꼴도 목격하고 가능성과 기회도 엿보고 그랬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팀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고요.”
3장 : '빅 블루'에서 사업을 배우다
JIT로 재고 제로에 도달하다
세계 최초로 PC를 개발한 기업 중 하나로서 IBM은 PC 제조에 선구적으로 JIT 제조 시스템을 적용했다. IBM은 1985년 1월 광학 저장장치와 레이저 프린터, 인쇄회로기판 등을 제조하는 애리조나주 투손Tucson 공장에 CFM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쇄회로기판의 자재 회전 주기는 17.5일이었지만, CFM이 완전 가동 상태에 도달한 1987년 12월에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품질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으며 공간 활용도 역시 100퍼센트 향상되었고 직원들의 사기도 21퍼센트 진작되었다.
기업이 '선한 힘'이 된다는 신념
모든 것을 접했을 때보다 더 낫게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이 기업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은 물론이고 노동 문제를 야기하는 공급업체와 협력해 일하는 방식, 제품이 남기는 탄소 발자국(상품의 생산·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 지원하기로 선택한 대상, 직원을 대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4장 : 파산 직전 회사에서 맞이한 일생일대의 기회
사업 운영의 새로운 리더
잡스는 1998년 3월, 37세의 팀 쿡을 기본 연봉 40만 달러와 특별 보너스 50만 달러에 세계 전역의 사업 운영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쿡에게는 제조와 유통을 총체적으로 정비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쿡의 채용은 잡스가 결정한 최상의 영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출근 첫날부터 그가 사업 운영에 탁월하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애플에서 30년간 근무한 베테랑인 그레그 조스위악은 쿡이 입사 이전부터 그런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스티브가 팀의 면접을 보던 시절이 기억나는데요. 스티브는 회사로 돌아와 운영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어요. 팀을 면접하면서 배운 내용이라는 걸 다들 눈치챘지요.” 조스위악은 애플파크Apple Park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렇게 입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운영에 관한 기존의 사고방식을 일부 바꿔놓았어요.”
굿바이 U.S, 헬로 아시아!
쿡은 애플에 합류하고 고작 7개월 만에 재고를 30일치에서 단 6일치 물량으로 줄였다. 생산 공정의 모든 세부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애플의 사업 운영 시스템을 완전히 정비한 것이다.
쿡은 잡스가 제품을 줄이기 위해 이용한 ‘선택과 집중’ 방식을 차용해 함께 일할 소수의 공급업체를 선별했다. 그는 모든 공급업체를 일일이 방문해 유리한 거래를 끌어내는 한편, 상대방이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당근도 제공했다. 그런 행보를 통해 이룬 두드러진 성과는 애플의 회로기판 제조 하청업체인 냇스틸일렉트로닉스의 생산 시설을 아일랜드와 캘리포니아, 싱가포르 등지의 애플자체 공장 근처로 옮겨온 일이다. 그렇게 조립 공장과 공급업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애플의 부품 조달 속도와 빈도가 늘어 JIT 프로세스를 훨씬 더 수월하게 운용할 수 있었다.
쿡은 외부의 파트너 기업에 생산을 위탁함으로써 애플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를 해결했다. 바로 ‘재고 누적 문제’다. 그동안 회사는 한쪽 끝에는 부품을, 다른 한쪽 끝에는 팔리지 않은 컴퓨터를 쌓아두어야 했으며 그런 부품과 컴퓨터를 쌓아두는 창고로 수년에 걸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재고관리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1996년 애플을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 팔리지 않은 컴퓨터의 엄청난 재고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쿡이 장악한 새로운 체제의 만트라는 ‘재고는 적을수록 좋다’였다. “창고가 있으면 재고가 쌓이기 마련이지요.” 쿡이 한 말이다. “우리는 제조 공장에서 고객에게 곧바로 배송하는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어요.”
잡스가 조잡한 디자인을 경멸하는 것 못지않게 쿡은 과도한 재고를 증오했다.
재고관리가 이상적으로 이뤄지려면 판매량에 대한 사전 예측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하지만 애플은 그 부분과 관련해 그리 자랑스럽지 못했다. 각기 다른 시점에 판매량을 너무 적게 또는 너무 많게 예상해 낭패를 본 길고도 슬픈 역사가 있었다.쿡은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SAP에서 개발한 최첨단 전사적 자원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 ERP 시스템을 도입해 애플의 부품 공급업체와 조립 공장, 그리고 전매업체의 IT 시스템을 서로 연결시켰다. 이 복합 시스템 덕분에 쿡의 운영팀은 원자재에서부터 얼마 전 신설한 온라인 스토어의 고객 주문에 이르기까지 전체 공급망에 대한 극도로 상세한 조감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R/3 ERP가 애플의 새로운 린 방식인 JIT 생산의 중추 신경망이 된 것이다. 부품은 필요할 때만 공급업체에 주문했고 제품은 즉각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만 생산했다.
사업 운영이 크게 개선되면서 쿡은 애플의 흑자 전환에 기여하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실로 애플의 모든 업무를 혁신했다. 그가 초기에 이룩한 최고 업적 중 하나는 아이맥 G3의 선적과 관련해 업계의 허를 찌르는 조치를 취한 일이었다(이것은 그가 자신의 부서에도 ‘다르게 생각하라’는 지시의 확실한 표시이기도 했다). 당시 애플은 아이맥을 주력 상품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회사는 그러기 위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많은 사람의 책상 위에 그것이 놓이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쿡은 추수감사절에서 신년 초에 이르는 그 중요한 축제 시즌에 고객에게 컴퓨터가 시기적절하게 배송되도록 1억 달러 상당의 항공화물 공간을 수개월 앞서 미리 예약했다. 이 전례 없던 조치는 애플에 큰 성과를 안겨주었다. 덕분에 애플은 제품을 빠른 속도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한편, 컴팩과 같은 경쟁사는 갑작스러운 선적 공간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선적 공간을 예약하는 애플의 새로운 접근은 여타 기업에게도 자체의 사업 운영 전략을 재고하도록 이끌었다. 쿡은 그렇게 애플의 사업 운영을 개선했을 뿐 아니라 기술 업계 전반의 생산 프로세스 관리와 해당 프로세스에 대한 인식까지도 바꿔놓았다.
5장 : 아웃소싱으로 애플을 구하다
세부지향적인 경영자의 길
반면 쿡의 전술은 현저하게 달랐다. 그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문제를 지적할 때는 가차 없었으며, 끝없는 질문 공세로 상대를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조용한 리더입니다.” 조스위악의 말이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고함을 치는 사람도 아니지요. … 그렇게 차분하고 침착하지만 질문 공세로 상대방을 조각낼 수는 있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이라면 자기 일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여지없이 당하거든요.” 쿡은 질문을 통해 어떤 문제든 자세히 파악하는 한편, 직원이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것은 직원들이 늘 빈틈없는 자세로 책임을 다하도록 만드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언제든 호출되어 설명하게 될 순간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10개의 질문을 던집니다.” 1998년 12월 쿡의 운영 그룹에 합류한 스티브 도일Steve Doil의 설명이다. “그 10개에 대답을 잘하면 열 번 더 물어봅니다. 한 1년 동안 그렇게 하면 9개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단, 하나라도 대답을 못하거나 틀리게 답하면 질문 수가 20개 내지는 30개로 늘어납니다.”
쿡은 직원들에게 엄청난 양의 세부사항을 요구했다. “직원들은 그와 미팅하는 순간을 두려워했어요.” 당시부터 쿡의 운영 그룹을 속속들이 알았다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D열의 514행에 적힌 이 변화량은 무엇인가요? 그런 변화가 생기는 근원이 무엇인가요?’ 이런 식으로 질문합니다. 만약 담당자가 세부사항을 모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신랄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애플의 하드웨어 그룹에 속한 한 관리자는 쿡이 주도하는 회의를 우연히 엿들었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순간 직원 한 명이 쿡이 알고 있던 수치 하나를 틀리게 제시하자, “그 숫자가 맞아요? 여기서 나가세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COO로서 쿡은 팀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모든 세부사항에 주의를 기울이길 기대했다. 간부들은 그가 이끄는 대로 그의 리더십 기술을 차용해 부하직원들에게 똑같은 자세를 기대했다. 전 글로벌 공급 관리자였던 헬렌 왕Helen Wang은 운영 그룹의 많은 선임 간부가 쿡과 마찬가지로 세부지향적이며 수치를 파악하는 데 묘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왕은 그들이 전체 스프레드시트를 암기하거나 비정상적인 숫자가 적힌 부분에 집중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들은 숫자의 바다에서 쉽사리 간과할 수 있는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기이한 능력을 발휘했다. 간부들은 회의 때 언급된 수치를 모두 기억했다가 하나라도 달라지면 공급 관리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간부들도 그렇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 쿡의 습관을 답습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9장 : 사법 당국과 싸워서 이기다
작전 상황실
애플은 2월 말 또 하나의 작은 승리를 거뒀다. 뉴욕에 위치한 한 지방법원이 애플에 소규모 마약상의 전화기를 열어줄 것을 명령해달라는 FBI의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제임스 오렌스타인James Orenstein 판사는 애플과 기업에 제품 보안을 해제하라며 명령하는 일에 총영장법이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애플의 입장을 들어주었다. 그는 “정부가 취하는 입장이 오늘날 가능하게 돼야 하는지와 1789년 의회가 의도한 바인지 이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판결이 샌버나디노 법원에 구속력을 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슈얼은 그것이 언론과의 싸움에서 그들이 그토록 필요로 하던 탄약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우리에게는 실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들고 언론계나 대체로 비방만 해대던 사람들에게 가서 ‘이것은 애플의 상업주의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애플의 악행에 관한 것도 아니며 원칙에 입각한 입장일 뿐’이라고, ’판사가 우리에게 동의했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쿡과 슈얼은 오렌스타인 판사가 그들의 편에 선 이상 다른 사람들도 곧 그 대열에 합류할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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